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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드힐링 만화(이거 진짜 맛있었엉)

푸드힐링 만화) 처음은 어색했는데 지금은 너 없으면 안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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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일본식 양배추 전으로, 위에서 춤추는 가스오부시와 소스가 섞여 입 안에서 조화로운 맛을 내는 오코노미야끼입니다

 

어렸을 땐 밤에 몰래 자는 척 TV를 보곤 했다.

심야에는 가끔 일본어 원문 그대로 방영되거나 외색이 짙은 애니메이션을 방송해주었다. 덕분에 한국에선 볼 수 없는 알 수 없는 음식들을 보는 경우가 많았다.

 

 

그 중에서 철판 위에 구워 주는 전은 무엇인지 궁금했다. 보통 전이라면 바삭하게 구워서 간장 소스에 찍어먹는데 저건 갈색의 알 수 없는 소스를 양껏 묻혀서 준다니. 한국에선 빈대떡이라고 로컬라이징해서 더빙되긴 했는데 내가 아는 빈대떡이 아니었다. 덕분에 도데체 무슨 음식인지 너무 궁금했다. 

 

기회는 갑자기 찾아오는 법.

학생이 되고 움직일 수 있는 반경이 넓어지자, 어느 날 엄마의 장거리 심부름 명이 떨어졌다. 마침 방학인 나에게 시내에 있는 은행 심부름을 보낸 엄마는 가는 김에 주변에서 점심을 사오라고 했다. 무려 신용카드를 쥐어주면서. 

 

 

은행 주변에는 큰 백화점이 있고 그곳에 지하 음식점을 갈 생각에 너무 신났다. 가격이 살벌해서 건들기 힘들어, 지나갈 때면 항상 예쁘게 포장된 음식들의 유혹을 참아야했다. 그러나 오늘은 엄마의 허락이 떨어진 이상 나를 막을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었다.

 

그렇게 도착한 지하 음식점에선 웬걸? 세상에... 사막에서 오아시스를 발견한 기분은 모른다. 그치만 그와 유사한 감정을 그때 확실히 느꼈다!! 애니메이션에서 빈대떡이라 불렸던 음식이 그곳에서 조리되고 있는 것을 눈 앞에서 본 내 마음은, 오아시스를 만난 기적이었다.

 

무엇을 거부하겠는가!! 나를 막을 수 있는 가격 장벽도, 엄마의 불허가도 아무것도 없는 그때의 나는 폭주하는 기차마냥 그곳의 음식들을 3개나 골라 포장해 올 수 있었다.

 

궁금했던 음식을 발견한 아기새들이었다.

동생 용용이도 이전부터 나랑 함께 저게 뭔지 입맛을 다시곤 했다. 그런데 그걸 누나가 사왔으니 용용이도 너무 신나서 빨리 먹자고 재촉하고, 나도 같이 덩실덩실 신나서는 오자마자 음식들을 펼치기 시작했다. 

 

 

새로운 것은 때론 매우매우 어색한 존재다.

어렸을 때 우리 남매가 처음 맛본 일본 음식은 초밥과 닭꼬지 정도였다. 그런데... 아니 그런데... 그토록 만남을 고대하고 간절한 바램으로 만난 새로운 일본 음식은... 크림 스프를 처음 맛보고 어색함에 기겁한 50년대 사람마냥 기겁했다. 정말 맛없고 느끼하고 뭔 맛인지도 모르겠고, 그나마 소스맛으로 참으려 해도 소스도 너무 달기만 했다. 음식으로 장난치나? 라는 생각을 할 정도로 너무 어색했다.

 

오코노미야끼는 그저 소스에 절여진 구운 양배추였다. 같이 사 온, 양배추를 달걀에 감싸서 구운 것도 안에 든 생양배추 덕에 그냥 계란 지단 얹힌 샐러드였다. 볶음 국수도 어린 나에겐 맵고 짠데다 면이 안 보였다. 단가를 낮추려 한 건지 숙주만 잔뜩 들어서는 이것도 숙주 볶음을 시킨 건지 볶음 국수를 시킨건지 구분이 안 가 화가날 정도였다.

 

지금 생각해도 황당하다. 당시에 김밥 한 줄이 1000원에서 1500원 정도였는데 그 음식 하나당 거의 10000원 씩이나 해놓고, 숙주나물 볶음에 양배추 샐러드라니. 10000원 한 장으로 이 세 가지 음식 다 만들 수 있는 거 아닌가? 돈 버렸다는 생각에 엄마에게 미얀했고 백화점 자식들이라고 어린 마음에 욕을 했었다. 

 

 

그래도 힘 내면 맛이 날 것 같은 무언가기도 했다.

폭발하는 용암도 시간이 지나면 굳고 진정되는 것처럼 내 화도 점점 가라앉을 때 쯤이었다. 생각해보면 다른 건 몰라도 오코노미야끼는 잘 만들면 맛있을 것 같았다. 그렇다면? 

바로 해봐야지! 열심히 블로그를 뒤지고 내가 먹었던 맛을 떠올리고 애니메이션에서 봤던 장면들을 되짚었다.(생각해보니 엄마가 먹는 것 만큼 공부했으면 서울대 갔다는 말이 정말 맞는 것 같다) 그렇게 가장 간소하게 준비한 재료는 양배추와 마침 맛간장 만든다고 남은 가쓰오부시, 부침가루 그리고 돈까스 소스였다.

 

처음 만드는 시도이니 마음을 비우고 준비했다.

양배추를 내 마음대로 썰어서 부침가루가 양배추에 묻을 정도만 붓고 그 위에 물을 넣어 섞었다. 정확한 레시피 없이 정말 필 받는대로 기억나는 묽기가 되도록 적당히 만들었다.

 

반죽을 만들 때 본토에선 마를 갈아서 부드러운 맛을 더해준다. 그런데 마는 굉장히 비싸다. 내가 해 본 결과 그냥 반죽에 소금간과 함께 마요네즈를 같이 넣으면 된다. 그럼 부드러워 진 데다 마요네즈에 입혀있는 간도 섞여서 훨씬 맛있다. 

 

그렇게 너무 질척거리지도 묽지도 않는 적당한 반죽을 노릇하게 앞 뒤로 중불에서 구웠다. 딱히 타이밍을 재지도 않고 그저 노릇할 때까지 열심히 구웠다. 뭐 처음 하는 거고 지금처럼 유튜브 영상을 보고 따라하던 때도 아니었으니까. 

 

잘 구운 양배추 전에 이제 소스를 발라야 하는데. 티비에서 보면 붓 같은 걸로 오코노미야끼 소스를 살살 발라준다. 그러나 가정에서 그런 게 어디있겠는가. 그냥 숟가락 뒷면으로 싹싹 발라줬다. 마요네즈도 그냥 숟가락 뒷변으로 같이 쓱쓱 발라주고 위에 가쓰오부시만 뿌리니 그럴듯하게 맛깔나는 오코노미야끼가 완성됬다. 혹시 예쁘게 만들고 싶다면 마요네즈를 위생봉지에 넣고 끝을 살짝 잘라 쓰면 된다. 짤주를 짜듯이 위에 한 줄 한줄 예쁘게 그어주면 된다. 

 

그렇게 맛 본 나만의 오코노미야끼 맛은? 뇌의 전두엽이 합격!! 이라고 외치는 소리가 들리는 맛이었다. 기대치가 낮아서 그런가? 그것도 있지만 노릇하게 구워서 적당히 소스 입히고 맛보니 이건 내가 알던 한국 전과는 다른 일본식 꿀맛이 나는 전이었다.

 

새로운 레시피를 발견했을 때의 기쁨이란... 당연히 불을 발견한 원시인 마냥 온갖 뿌듯함과 새로운 세상을 연 듯한 행복이 밀물 마냥 밀려왔다. 

 

 

거기서 끝냈어야 했는데.

맛있다고 어찌나 폭주했던지. 취업준비생이 된 뒤 였다. 만들기도 간편하고 맛도 좋은데다 양배추는 다이어트 재료가 아닌가? 당근 먹어도 괜찮겠지 하는 안일한 생각으로 푸지게 먹었다. 어떻든 기름 양껏 먹은 칼로리 폭발 전이니 후폭풍은 엄청났다. 

 

그때의 충격이야 말로 어떻게 표현하겠는가. 살다살다 내가 이런 몸무게를 가질 줄 상상도 못 했었다. 물론 안다. 매일 앉아있는 생활에 칼로리도 신경 안 쓰고 스트레스성 폭식도 반복한 결과란 걸. 그런데도 받았던 충격의 크기는 머리를 수십차례 가격 당한 수준이었다. 

 

바로 집 앞 헬스를 끊었다. 그나마 내 몸 눈치 안 볼 수 있는 여성 헬스장에 가서 미친듯이 달렸다. 그리고 식단 관리라는 것도 인생에서 거의 처음으로 체계적으로 관리해서 먹었다. 살다살다 탄수화물을 끊는 기간도 가져보고 간식도 안 먹는 기간도 가졌었다. (그런데 이 방식 절대적으로 비추천한다 탄수화물 적당히 안 먹으면 스트레스와 짜증이 쌓여서 주변 사람들에게 화풀이하게 된다 그럼 화가 난 주변 사람들의 반격으로 욕먹고 짜증이 더 쌓여, 더 크게 폭발했다가 의절당할 수 있다 그렇게 호적에서 파일 뻔했다가 살아남았다)

 

그래도 맛있는 걸 어찌 포기하겠는가.

잘못된 다이어트 이후에 적당히란 걸 알게 되고 착한 레시피 개발에 용을 쓰게됬다. 그 중에서 오코노미야끼도 다이어트 음식으로 만들 게 됬다. 

 

밀가루와 소스를 빼는 방법. 다이어트 할 땐 되도록 밀가루를 줄여야 하기에 부침가루 대신에 감자 한 개와 양파 반 개 그리고 계란 한 개를 갈아서 반죽을 만든다. 거기에 썰어놓은 양배추를 넣고 노릇하게 구우면 된다. 

가쓰오부시도 금지. 소스 중엔 가장 살이찌는 돈까스 소스도 당근 금지. 마요네즈는 하프 마요네즈나 채식용 저 칼로리 마용네즈를 발라서 먹는다. 이쯤되면 오코노미야끼가 아닌 것 같지만 그런대로 맛이나긴 한다. 그런데 이건 솔직히 나도 잘 안 쓰는 방식이다. 급하게 빼고 싶었을 때 먹던 방식이다. 

 

평상시엔 부침가루를 써서 반죽을 만든다. 대신에 가쓰오부시와 돈까스 소스는 그대로 안 쓰고 마요네즈는 그대로 쓴다. 신기한 게 오코노미야끼는 돈까스 소스나 오코노미야끼 소스 없이 마요네즈만 발라도 진짜 맛있다. 대신에 전의 크기를 작게 해서 먹곤 했다. 양배추는 조금만 먹어도 배부르기에 자주 애용하는 맛있는 다이어트 음식이다. 이렇게 분명 처음에는 어색함에 거리를 둔 오코노미야끼는 지금도 종종 구워먹는 좋아하는 음식 상위권에 드는 음식이 됬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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