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손으로 직접 반죽하고 뜯어서 멸치 국물에 팔팔 끓여먹는, 쫀득 부드러운 수제비입니당.
우리 집 주말 점심은 엄마에게 고통의 시간이다.
가족들 입맛이 모두 다른데다 아빠는 한식 위주로 요구하고 나랑 동생은 어린이 입맛을 만족시키길 요구했다. 게다가 주말이니 무언가 평일보단 특별한 무언가를 먹길 원했다.
그럼 편하게 외식하면 되지 않나? 문제는 우리 집 흥선대원군 겪인 아빠가 나가서 사 먹는 것도 그렇게 좋아하진 않았다.
그렇다고 대충 먹는 것도 아니다. 매번 김치만 있으면 되지라고 말해놓고 메인으로 먹을 다른 것도 요구했다. 문제는 뭘 해주면 되냐 물으면 엄마에게 알아서 잘 차려달라 말하는 덕에 엄마는 더 골치아팠다.
이럴때는 뭐다? 수제비!
우리 가족 모두 좋아하고 주말 점심에 먹기 딱 안성맞춤 메뉴하면 수제비였다.
엄마의 수제비는 진짜 맛있다. 멸치팩으로 우려낸 육수에 채소을 넣고, 직접 숙성시킨 반죽을 하나씩 뜯어서 끓여주신다.
그럼 손으로 마구잡이로 뜯었다보니 일정한 형태를 가지지 않고 어떤 부분은 굵고 어떤 부분은 얇거나 중간 굵기의 울퉁불퉁한 반죽이 나온다. 덕분에 굵기에 따라 다른 식감을 즐길 수 있어 너무 좋다. 국물도 멸치 육수 특유의 묘하게 시원하면서 자극적이지 않고 맑고 개운한 맛이 나서 수제비와 같이 떠서 먹으면 힐링 그자제다.
매번 만들기에는 번거로운 음식이기에.
문제는 만들 때마다 반죽을 치대고 냉장고에 최소 1시간은 숙성시켜야 하는 번거로움이 있다. 그렇다보니 정 만들기 번거롭다면 쓰는 방법이 있다. 바로 김밥가게! 여긴 아빠도 그런데로 먹는 가게라서 종종 포장해 와서 먹곤 했다. 문제는 누가 사가냐? 바로 나... 무조건 나를 시켜서 내보냈다.
우리 집 김밥가게 메뉴는 주로 돈까스와 김밥 그리고 수제비였다. 바삭한 돈까스와 김밥을 같이 먹다가 수제비 국물을 수제비와 함께 떠서 먹으면 이런 말해모해 조합이 없었다. 특히 집 앞 김밥가게의 돈까스가 직접 만든건지 아니면 튀기는 기술이 좋은건지 너무 맛있었고 수제비도 맛다시 덕인지 국물이 예술이었다.
주변에 다른 김밥가게에서도 종종 수제비를 사먹곤 했다. 그곳은 특이한 게 미역이 들어간 수제비를 팔았다. 미역으로 우린 육수라서 고기를 넣지 않아도 고기육수같은 맛에 조개까지 넣어 깔끔한 해산물 육수까지 첨가된 맛이었다. 그러니 이곳의 수제비도 예술이었다. 역시나 손으로 뜯은 수제비가 들어가 쫀득 오동통 매끄러운 다양한 식감과 깔끔한 육수로 인해 힐링되는 맛이었다.
수제비는 나의 힐링 푸드인데 이것 만큼은 싫다.
바로 공장 수제비 반죽을 넣은 수제비. 들어간 가게에 수제비가 있으면 꼭 시킬 정도로 좋아하는데, 만약 기대를 안고 받은 수제비에 공장 수제비가 들어있으면... 화가 난다. 새로 출시된 과자를 받고 뜯어보니 그 안에 또 포장지가 있어 계속 뜯은 끝에 아주 작은 과자 한 개를 발견한 것 만큼 큰 불쾌감을 느낀다.
이건 내가 말한 식감이 저어어어언혀 없다! 공장에서 일정한 규격과 크기로 만들어져있어 한 입 먹을 때 다양한 식감 없이 한 가지 식감만 느껴진다. 바로 질겅인 듯 쫀득인 듯 그 사이의 맛. 떡만큼 쫀득한 건 아닌데 그렇다고 부드럽지도 않은 애매한 맛. 심지어 간혹 밀가루 풋내까지 나서 근처도 가기 싫은 맛이다. 물론 이 맛을 좋아하는 분들도 있지만 나에게 있어 수제비는 무조건 손수제비이기에 이건 못 받아들이겠다.
가게에선 안 시키면 그만이지만 급식은 못 피하는 법.
가게는 다른 주문한 테이블을 몰래 보거나 사장님께 여쭈어보고 결정하면 된다. 그런데 피할 수 없는 곳이 있다. 바로 급식! 이미 카레라이스 편에서 말했지만 내가 다닌 고등학교 급식은 엉망 그자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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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통 급식 반찬 중에 메인 메뉴가 있어야 하는데 절대 밥 반찬이 될 수 없는 메뉴를 메인으로 놓곤 했다. 그럼 국물에라도 밥을 말아서 먹어야 한다. 문제는 수제비가 나오면 못한다. 왜냐하면 국물이 하얗다. 물이 끓기 전에 공장 수제비를 넣은건지, 아니면 농도를 잡으려고 밀가루를 그냥 넣으건지 알 수 없다. 정말 우유색을 살짝 띄면서 밀가루가 풀어진 듯한 맛이 나서 못 먹는다.
그렇다면 수제비가 땡길 땐? 당근 김밥가게로 고고! 였는데...
급식이 어떻든 수제비가 급하게 먹고싶으면 김밥가게에 가면 된다. 그랬었는데... 정말 동네가 시골이라 그런가 매번 가게들이 비슷한 이유로 폐업한다. 장사가 잘 되어도 사장님에게 갑자기 개인 사정이 생기면서 문을 닫곤한다. 그럼 다른 김밥가게에서 먹으면 되겠지 했는데. 이곳도 무슨 이유에서인지! 수제비를 만들기 번거로워서 그런건지! 메뉴를 아예 없에버렸다...
그럼 아쉬운 사람이 어떻게 한다? 직접 움직여야지.
어쩌겠는가. 뭐든 안 되면 내가 직접 만들어서 부족한 수제비력을 채워야지. 그렇게 처음으로 수제비 만드는 법을 검색하고 엄마에게 물어서 만들어봤다. 유튜브에서 나온 레시피도 참고해서 밀가루와 물 그리고 기름의 비율을 알 수 있었다.
반죽을 만들었으면 어렸을 때 뒤집기 하려고 용쓰던 모든 힘을 모아 치댔다. 쫀득한 식감을 생성하기 위해 어찌나 힘을 줬던지 팔이 조금 아플정도로 열심히 치댔다. 덕분에 반죽이 무를 것 같았는데 금방 보들한 보름달 같은 반죽이 만들어졌다.
잘 만든 반죽은 바로 냉장고에 1시간 정도 휴지. 그리고 나서 육수를 우리고 채소와 반죽을 넣어 끓였다.
결과는? 대실패!!!
아니 왜지??? 정말 한 여름에 눈이 온 것 같은 황당함을 느낄 정도로 당혹스러웠다. 분명 레시피대로 따라했는데 왜 미묘하게 육수는 덜 깊은데다 채소도 묘하게 덜 우려진 것 같았다. 제일 중요한 수제비는 쫀득한 맛은 전혀 없고 얇은 부분도 부드럽다기 보단 그냥 힘없이 축 쳐진 느낌이었다. 이게 뭐지? 너무 놀래서 엄마에게 물어보니 기름 안 넣었냐는 질문 뿐이었다. 분명 알려준대로 했는데? 수제비가 은근 전문가 영역임을 그날 깨달았다.
이후에도 3번 더 도전했는데 다 실패했다. 엄마의 손 맛은 10분의 1도 안 나왔다. 엄마는 경력자의 손 맛을 보여줬지만 난 엉성 그자체였다. 이대로 갑자기 먹고싶을 때마다 바로 먹을 수 없는 음식이 되는건지... 엄마에게 계속 부탁하는 것도 번거롭다고 까이기 일쑤일 껀데 어떻게 먹을 수 있을지 이리저리 고민에 빠지게 됐다.
세상은 우리에게 항상 기회를 준다.
이제 자유롭게 만날 수 없는 존재가 된 줄 알았던 수제비. 그러나 집 근처에 수제비 전문 가게가 생겼다. 가게 소식에 어찌나 기뻐했던지. 내 모습을 봤다면 수능 이후에 대학 합격 소식 들을 때보다 더 기뻐한 돼지 한 마리를 볼 수 있었다. 가족과 함께 찾아 간 가게는 심지어 해산물을 넣고 끓인 바다 육수에 직접 찢어서 넣어 끓인 쫀득 부들 손수제비가 가득 들어있었다. 가게는 곧 나의 구세주같은 곳이 되었다. 덕분에 나는 오늘도 수제비가 먹고싶으면 얼마든지 먹을 수 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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