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그냥 메밀국수도 아닌 판 위에 올려진 면을 장국에 담가 호로록 마시듯이 먹는 판메밀국수 입니당!
판메밀국수를 처음 먹은 날을 아직도 기억한다.
초등학생이었을 때 엄마가 아는 엄마들과 내 또래들과 같이 밥을 먹으러 어떤 가게에 갔을 때다.
그곳에서 엄마들은 아이들에겐 왕만두를 주문시켜줬고 우리는 숟가락으로 앞접시에 담아 열심히 퍼서 먹었다. 따끈한 만두가 입 속에서 고기와 채소들이 어울러져 너무 맛있었다.
그리고 다 먹고나면 아이들은 다 같이 놀기 시작하는데 나는 끼지도 못했다. 극 I인 나에겐 같이 온 극 E들의 아이들과 어울리지 못하는 건 당연했다.
지금에야 개인의 성격과 성향을 알파벳으로 분류하여 이해하기라도 하는데 그땐 그냥 못 어울리면 혼자되고 어른들은 내 아이는 뭐가 문제길레 저 애들하고 못 어울리냐며 오히려 아이 성격에 문제를 제시하고 억지로 더 어울리라고 그 속에 던져놓던 시절이었다.
성인이 되기 전에도 집순이 면모까지 있던 나에게 안 친한 아이들과 그것도 잘 노는 아이들과 놀라니 악몽이었다. 그렇게 그 아이들과 떨어져 혼자 가게를 돌아다니다가 무언가를 먹고 있는 엄마를 봤다. 그건 TV에서 종종 캐릭터들이 먹던 특이한 면이었다.
애니메이션을 보면 일본만화다 보니 종종 캐릭터들이 구수한 메밀로 만든 면을 컵에 담긴 국물에 담가 먹는 것을 봤다. 저게 뭔지 매번 입맛을 다시며 궁금해했는데 그걸 마침 엄마가 먹고있었다.
알고보니 그날 엄마들의 모임 장소가 판메밀국수 전문 가게였다.
나는 신기함에 엄마에게 가까이가서 그게 무엇인지 물었고 엄마는 메밀국수라며 한 입, 입에 넣어줬다. 엄청난 맛이었다. 시원한 장국소스와 평소 싫어하는 채소인 갈아진 무가 면에 촘촘히 붙어 어울려지면서 입 안으로 호로록 넘어오는 식감이 예술이었다.
정말 신세계를 만난 기쁨에 행복했고 또 먹고싶었지만 엄마는 다시 애들하고 놀라며 나를 보냈다. 누가봐도 안 놀아주는 것도 보이는데 지금도 그때를 생각하면 참 속상하다. 어머니... 딸은 극단적 내향성인데 학교에서도 소위 좀 놀거나 친구 많은 인싸랑 놀라하는 건 불가능합니다.
아무튼 그때가 내 첫 판메밀국수와의 만남이었다. 너무 맛있어서 혼자서 할 것도 없고 그냥 땅만 보고 시간만 지나길 바라며 멍 때리던 순간에도 판메밀국수만 생각했다. 이것만 봐도 확실히 음식에 환장했던 떡잎이 보여 조금 부끄럽긴하다.
집에 돌아온 나는 바로 엄마에게 가게와 음식에 대해 물었고 그렇게 맛있었으면 주말에 가족끼리 가자고 약속을 받았다. 덕분에 주말에 다시 간 가게에서 나는 동생과 나눠 먹었다.
2개의 다소곳하게 살짝 감아놓은 면 위에는 김가루가 뿌려져 있었고 받아든 장국에는 내가 원하는 만큼 무를 넣을 수 있었다. 아빠는 메밀에 독이 있는데 무와 같이 먹으면 중화되니 꼭 넣으라 했다. 저번에 먹은 한 입에서 신기할 정도로 무가 맛있었던 기억도 나서 평소 편식 습관과 다르게 잔뜩 넣었다.
그렇게 먹어본 한 입은 말해 모하는가. 저번처럼 달달 시원하면서 깊고 맛있는 장국 육수가 살짝 벤 국수는 쫄깃하면서 부드러운 식감이 입 안에서 퍼졌고 무도 알싸하거나 매운맛도 전혀 없이 오히려 달달하고 개운한 맛을 전해줘 여름의 행복 그 자체였다.
아빠도 엄마가 맛있는 가게를 발견했다해서 따라와보니 너무 맛있었는지 여름이면 우리 집의 단골 가게가 되었다. 그러나 슬프게도 어린 내가 봐도 이런 위치에 사람이 올까 싶은 생각이 많았는데 아니나 다를까 가게는 얼마안있어 문을 닫았다.
지금이야 백종원의 골목식당 프로그램이나 다양한 블로그 그리고 유튜브 관련 채널들을 보면서 음식점이 성공하기 위한 기본적인 운영방침이나 가게 위치의 중요성, 마음가짐 등의 정보를 금방 얻을 수 있지만 그때는 아니었다. 정말 맨 땅에서 헤딩하듯 시작하거나 큰 돈을 배워야 겨우 알 수 있는 것들이 많았다.
주저리 주저리 말이 많았는데 하고픈 말은 정보도 별로없는 그 시절의 어린 나조차도 이 가게가 자리잡은 위치에선 손님을 끌긴 힘드니 잘못하면 사라진다는 생각이 있었다. 물론 사실은 가게가 다른 이유로 문을 닫았을 수는 있지만 매번 우리가 방문할 때마다 넓은 가게에 손님이 우리 뿐일 때가 많았던 것을 고려하면 가능성은 높았다을 것 같다. 그렇게 맛집이 소리소문없이 사라진 것을 눈 앞에서 확인했을 땐 속상했다.
왜 이런 맛있는 가게가 사라질까 아니면 내 입에만 맛있었나 싶었다. 그러나 조금만 마음에 안 들면 가게를 탈락시킨 엄마가 통과시켰다는 건 맛집인 건 확실했다. 아무튼 덕분에 여름이면 이렇게 성인이 된 지금도 계속 그 가게의 판메밀국수가 생각난다.
그래도 그만큼 맛있는 가게가 또 있지 않을까 탐방한 적도 있다.
그 집이 문을 닫은 후엔 아빠도 많이 아쉬워서 이리저리 동네에 차를 몰고 메밀국수 판매점을 기억해뒀다가 방문하곤 했다.
전부 다 실패했다. 그 집은 면도 직접 뽑아서 쫄깃 탱탱 부드러움을 한 번에 느낄 수 있었다면 다른 집들은 다 시중의 일반 메밀면을 적당히 삶아주긴 했어도 맛이 없었다. 장국 소스도 평범 또는 무난히 먹을만 했지만 굳이 돈 내고 사먹고싶진 않았다. 결국 포기한 우린 지금도 판메밀국수를 그리워하는 마음이 이어지고 있다.
나름 다른 지역에 가서도 판메밀국수를 가끔 찾아보곤 했는데 다 실패했다. 방송에 나왔다는 가게도 왜?라는 의문이 들만큼 맛은 내가 집에서 끓여도 이거랑 차이는 없겠다 싶은 맛이었다. 진짜 그 맛을 다시 언제 느껴볼까 싶을정도로 여름이 올 때마다 생각나 힘들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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